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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북동단에 자리한 울진은 한국에서도 오지로 꼽힌다. 산악 지형이 동해를 향하면서 급경사를 이루어 평야가 좁은 탓이다.
사람 손을 덜 탄 만큼 울진은 일제의 횡포 속에서도 100만 그루 금강송을 온전하게 지켜 낼 수 있었다. 울창한 금강소나무숲과 오염되지 않은 왕피천은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여행자에게 낙원이나 다름없다.
왕이 몸을 피한 곳 ‘왕피천’
왕피천은 골이 깊어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왕피천에는 ‘왕이 피신해온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주 오랜 옛날 군장국가시대, 강원도 삼척 일대에 삼척 김씨가 다스리던 실질국이 있었다. 이 나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안일왕은 강릉 김씨가 지배하던 예국의 침공을 받아 피난길에 나섰다. 그는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왕피리에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그가 통곡하며 넘은 산에는 통고산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산기슭이 동해로 급하게 흘러내리다 보니 왕피천은 유속이 빨라 하천 골짜기가 좁고 가파르다. 일부 구간은 차량은 물론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왕피천 상류에서는 매년 2월이면 연어 치어 방류행사를 한다. 90만 마리에 육박하는 치어들은 북태평양을 거쳐 베링해까지 2만km의 긴 여정을 마친 후 3~4년 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굴구지 마을에서 용소 전망대 가는 길
왕피천을 탐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왕피천 유역 둘레길’을 걷는 것이다. 총연장 51.7km에 달하는 둘레길은 모두 7개 노선으로 구분된다.
1구간(10.5km)은 탐방안내소에서 박달재-골안교-한천마을-거리고마을로 이어지며 1-1구간(13.4km)은 박달재-거북바위-불영사로 향하여 탐방안내소로 오게 된다. 어느 길을 택하든 하루를 다 소비해야 한다.
2구간 왕피천 마을길(12.4km)은 그중 왕피천을 가장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코스다. 2구간 출발점인 굴구지 마을에 차를 세운 후 속사 마을 방향으로 걷다가 용소에서 되돌아오는 코스를 택하면 편도 2.5km, 왕복 5km를 걷게 된다.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코스다.
길은 굴구지 마을에서 출발하여 왕피천 계곡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반등하여 용소 전망대까지 이어진다. 도중에 천변 모래사장도 만나고, 단풍 구경도 하고, 지질 탐사까지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왕피천을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는 코스다.
왕피천은 102.84㎢라는 환경부 지정 국내 최대 생태경관보전지역이다. 그 옛날 왕들이 이곳으로 몸을 피했듯 최근에는 여왕벌들이 농약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을 오고 있다. 주체는 달라졌지만 왕피천이라는 정체성은 지킨 셈이다.
지질 트래킹으로 만나는 왕피천
왕피천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지질구조를 자랑하다. 이곳에서는 돌개구멍·절리·토르가 관찰된다. 그중 돌개구멍은 물에 떠밀려 빙글빙글 돌던 자갈이 오랜 시간 동안 암석을 깎아 만든 그릇 모양의 침식 지형을 말한다. 약식 트래킹 반환점에 해당하는 용소와 용머리바위가 바로 돌개구멍이다.
단열이라고도 하는 절리는 암석의 갈라진 틈을 일컫는다. 이곳 학소대와 거북바위가 바로 단열이다. 토르는 수직으로 발달한 절리가 오랜 시간 풍화되어 탑이나 벽돌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변한 바위 지형으로 송이바위가 이에 해당한다.
용소와 용머리바위는 65km에 달하는 왕피천에서 가장 폭이 좁고 깊은 곳으로 불영사 용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이곳을 따라 내려와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사람들은 깊은 암벽 사이에 자리 잡은 이곳을 신성하게 여겨 절대 사람이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했다.
용소 입구에 자리한 용머리바위는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으로 입속 물웅덩이는 어른 5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크기가 넉넉하다. 용소 전망대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씩 찍은 후에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
금강소나무 국내 최대 서식지
금강소나무 최대 서식지로 알려진 서면 소광리 일원에 ‘울진금강소나무숲길’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왕실의 전유물이던 최고급 토종 소나무가 100만여 그루 빽빽이 우거져 자란다. 조선 왕실은 120년 이상 된 소나무만 골라 나라님의 관으로 사용했다.
금강소나무(금강송)은 금강산에서부터 강원도 강릉과 경북 영양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 품종을 말한다. 형태적으로 키가 크고 곁가지가 없다. 광복을 맞기 전까지 일제는 17년간 이 땅의 나무를 베어갔다. 울진은 산이 깊다. 일제는 여기까지 들어오지 못했다. 이로 인해 100만 그루 소나무를 지켜낼 수 있었다.
금강송은 성장하면서 스스로 곁가지를 떨구어낸다. 목재로 사용하기 좋게 스스로 몸을 만드는 기이한 나무다. 키가 큰 것은 35m에 이른다.
숲길 입구 금강소나무전시실에는 일반 소나무와 금강소나무를 비교할 수 있도록 원목을 전시해두고 있다. 금강소나무는 일반 소나무에 비해 나이테가 촘촘하다. 결이 곱고 단단하며 잘 썩지 않고 벌레도 안 먹는다. 속이 붉어 ‘황장목’이라고도 불린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애지중지 돌보는 울진 금강송이지만 울진군은 2001년 경복궁을 수리할 때 140그루, 화재 피해를 입은 낙산사 재건할 때 50그루를 제공했다. 한 그루의 가치는 최소 7000만 원에 달한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소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된 ‘500년 소나무’다. 까마득하게 큰 키로 세상을 굽어보는 모습이 경외감을 일으킨다. 정확히 따지면 나이 500살이 훌쩍 넘었지만 나무의 수령은 100살이 넘어가면 100년 단위로 끊어서 부른다고 한다. 600살 되기 전까지 모든 나무는 500살이다.
울진금강소나무길은 모두 7구간으로 구분되며 각각의 길이는 10~15km에 이른다. 500년 소나무가 있는 길은 마지막 7구간 ‘가족탐방길’로 총 길이는 5.3km에 이른다. 금강소나무생태관리센터에서 출발해 500년 소나무-못난이소나무-미인송-금강소나무군락지 전망대를 고쳐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늦가을 가족과 한나절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골이 깊어 험해서 발전이 더디긴 하지만 울진은 남부럽지 않다. 물 맑은 왕피천과 일제도 손을 못 댄 금강소나무 숲길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진이야말로 오래 보아야 예쁜 꽃 같은 도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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