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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은 겨울 산행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겨울이면 많은 눈이 내려 눈꽃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을부터 봄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 덕유산을 치장하는 것은 상고대다.
상고대는 공기 중의 습기가 나무나 풀에 들러붙으면서 부피를 갖고 자라난 것이다. 한자로 수빙(樹氷)·무빙(霧氷)이라고 한다. 이 습기가 나무에 붙지 않고 땅에 내려 앉으면 서리라는 이름을 얻는다.
가을날의 상고대를 만나다
덕유산 정상은 상고대가 가장 먼저 찾아오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는 곳으로 빠르면 10월 초에, 늦게는 5월까지 관찰된다. 앙상한 가지에 겹겹이 들러붙은 상고대의 모습에서 바닷속 산호초를 연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외형은 한겨울 눈 내린 뒤의 설화와 비슷하지만 가지의 형태가 조금 더 정교하고 섬세하여 기품이 느껴진다.
상고대가 피려면 조건이 맞아야 한다. 먼저 기온이 -6℃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 습도는 90%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풍속은 초속 3m 이상이어야 한다.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은 높이가 해발 1614m에 달한다. 덕유산은 한라산·지리산·설악산에 이어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향적봉을 가운데 두고 동쪽으로는 지봉이, 북쪽으로는 칠봉이 자리한다. 산이 높고 깊으니 당연히 기온도 낮다. 이곳은 가을·겨울이 빨리 오고 봄·여름이 늦게 찾아온다.
덕유산에는 8개의 계곡이 있다. 그중 백련사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28km를 흘러 설천면 나제통문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물줄기가 그 유명한 무주구천동이다. 이 물길은 흐르고 흘러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으로 향한다.
여기에다 덕유산 서쪽으로는 금강이,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흘러 강줄기에서 피어오르는 축축한 습기가 온 산을 휘감으니 습도가 높다. 덕유산 상고대가 오래 관찰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관광 곤돌라 이용해 손쉽게 본다
전라북도 무주·장수, 경상남도 거창·함양에 걸쳐 있는 덕유산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소백산맥이 소백산·속리산을 맺어 놓고 지리산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빚어놓은 흙산이다. 생긴 모양새가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워 이름도 후덕하고 너그러운 ‘덕유’가 되었다.
보통은 등산을 통해 덕유산 상고대 권역에 접근하지만 이달 15일부터 12월15일까지 가을철 건조기 산불방지 기간을 맞아 덕유산 일부 탐방로 출입이 통제된다. 따라서 개방코스는 삼공매표소-백련사-향적봉-적상산 코스로 제한된다.
무주덕유산리조트의 관광 곤돌라를 이용할 경우 입산 통제가 없는 데다 정상 부근인 설천봉(1522m)에서 산행을 시작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상고대를 감상할 수 있다.
설천봉에서 향적봉 정상까지 불과 600m 거리다. 능선을 따라 나무 데크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어 어린이도 충분히 정상 정복이 가능하다. 접근이 쉽다 보니 이 일대는 늘 산행에 나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특히 상고대가 시작되는 이맘때면 나무 반 사람 반의 진풍경이 연출된다.
상고대는 속성상 태양에 약하므로 일출 후 2시간이면 사라진다. 곤돌라 출발 시간인 오전 9시에 맞추어 산행을 계획할 경우 상고대를 못 볼 확률이 높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겨울이라면 이런 걱정이 필요 없겠지만 희소가치를 따질 때 가을날의 상고대가 더 매력적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좌절할 일만은 아니다. 극적인 상고대를 관찰할 확률은 떨어지지만 태양 빛이 약한 날을 골라 산에 오른다면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 가능하다. 각도만 잘 조절한다면 SNS ‘좋아요’를 부르고도 남을 진기한 상고대 풍경까지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신의 작품인 듯 경이로운 풍경
상고대가 하얗게 핀 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느긋하게 산정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기분은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 보통 때라면 평범한 풍경도 하얀 상고대 옷을 걸치니 나무 하나하나, 돌멩이 하나하나까지 전부 신이 빚은 작품인 듯 경이롭게 느껴진다.
산을 찾은 사람 모두 판타지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비경을 사진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덕유산은 남쪽 지역에 속하지만 해발 고도가 높은 향적봉 주변에서는 주목을 비롯해 구상나무·가문비나무·눈개승마·마가목·부게꽃나무·자주솜대 등 북방계 식물이 관찰된다.
특히 향적봉 8부 능선부터 정상에 이르기까지 300~500년생 주목 10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향적봉에서 중봉 가는 길에는 5000여 평 규모의 주목 군락 복원 조림지가 조성되어 있다. 과거에는 주목이 향적봉에만 있는 나무라고 하여 향목·적목이라고 불렀다. 주목은 재질이 단단해 과거 마패의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20여 분을 걸어 향적봉 정상에 오르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발아래로 꼿꼿한 주목 군락이 펼쳐져 있고 멀리 운무가 산자락을 휘감아 돈다. 눈 앞을 가리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뻥 뚫린 시야로 적상산·남덕유산·중봉… 해발 1300m 안팎의 능선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향적봉 정상 표지석을 중심으로 오른편 계단을 내려가면 물을 마실 수 있는 약수터가 나오고 약수터 뒤편으로는 향적봉대피소가 자리하고 있다. 등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산책 삼아 일대를 둘러볼 만하다.
한편 무주 덕유산리조트 관광 곤돌라는 선로길이 2.6km에 5m/s의 속도로 움직인다. 총 103기를 운행하며 대당 정원은 8명이다. 운임은 성인 기준 왕복 2만 원 편도 1만6000원이다.
성수기인 10~2월에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잔여 분에 한해 현장 발권이 가능하다. 현장 발권 시 대기 줄이 꽤 길다. 이 기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상행 운행하며 오후 4시30분에 하행 운행이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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