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위로 케이블카가?” 서울의 기록자 임인식 기증유물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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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965 그때 그 서울’ 3월10일까지
그 시절 서울 거리·시장·고궁·한강 속으로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1-08 10:13:30

▲ 창경궁 위로 케이블카가 지나고 왕의 연못 춘당지에서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늘구멍 사진을 실험한 이래 빛을 붙잡아 그림으로 정착시키려는 인간의 노력은 현대에까지 이어졌다.

사진문화가 비교적 늦게 정착된 한국은 6·25전쟁을 통과하면서 한영수·정범태·황헌만·임정의·김한용·김기찬·홍순태 등 걸출한 사진가를 배출하게 된다.

빼놓을 수 없는 사진작가인 임인식(1920~1998)은 생전의 기록물 1003점을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7일 오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많은 시민이 임인식 기증유물특별전 ‘그때 그 서울’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사진대 대장, 폐허를 찍다

1920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임인식 작가는 광복 전 서울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서울의 풍물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사 출신이었던 그는 사진대 대장으로 종군하여 전쟁의 실상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후 사진 전문 ‘대한사진통신사’와 ‘신한관광사’를 운영하면서 서울의 다양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임인식 하면 종군작가로 알려졌지만 거리·시장·고궁·한강 등 서울의 다양한 장소를 많이 찍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시는 크게 6·25전쟁 시기와 전쟁 복구 시기 두 부분으로 나뉜다. ‘폐허가 된 서울’ 섹션에서는 피난 가는 시민들의 행렬과 포격으로 폐허가 된 9·28서울수복 이후의 상황을 만날 수 있다.

서울은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격전지 중 하나였다. 용산·명동·영등포 지역은 시가전으로 거의 초토화되었고 서울시민은 전쟁 기간 피난과 귀향을 반복했다. 이때의 모습이 △폐허로 변한 자문동(1950) △서울역 피난민(1950) △멈춰버린 종로 전차들(1950) △건물 기둥만이 앙상하게 남은 명동(1952)에 잘 드러나 있다.

민간인 최초 서울 항공사진

전쟁이 끝나자 임인식은 일상을 되찾고자 하는 시민들의 희망찬 모습을 많이 포착했다. 특히 1954년부터 촬영한 서울 항공사진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민간인으로는 최초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론이 발명되기 전 포토그래퍼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헬기에 올라야 했다. 임인식은 신설동 경비행장에서 L-19에 올라 사진 촬영에 임했다.

그가 찍은 사진은 서울 중앙청·남대문 등 강북에 집중되어 있다. 당시만 해도 강남은 전부 논바닥이라 기록으로 남길 게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면서 한국인의 문화도 서구의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도 격동기였던 그 시절 임인식 작가는 소공동 경향신문사 앞 선거 발표 속보판(1956)을 사진으로 남겼다. 선거 결과를 보기 위해 시민들이 장사진을 이룬 모습은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에는 결코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창경원은 놀이공원, 뚝섬은 피서지

▲ 시민들이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아 임인식 기증유물특별전 ‘그때 그 서울’을 관람하고 있다. 임유이 기자

일제가 우리 궁궐을 훼손해 놀이공원으로 만들었던 창경원은 어쩐 일인지 꽤 오랫동안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01년 개장해 1986년 완전 철거되기까지 창경원은 서울시민의 위락시설로 자리 잡았다. 궁궐 위로 케이블카가 지나고 궁궐 연못에서 사람들이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한강 개발로 사라져 이제는 볼 수 없는 한강의 옛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다들 바닷가로 여름휴가를 떠나지만 당시만 해도 시민들은 백사장이 길게 형성된 뚝섬 유원지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작가는 커다란 튜브를 이고 이동하는 사람들과 냉차 가게의 모습 등을 카메라로 포착했다.

그 외 이번 전시회에서는 가회동 골목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삶의 현장 남대문의 이모저모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여전히 천진하고, 시장은 변함없이 북적거린다. 세월이 흘러도 그것만은 변하지 않았다.